한의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원래 내가 쓴 글이라도 옛날 글은 들여다 보게 되지 않는데, 오늘 어쩌다 보니 몇 달이나 지난 글을 지난 1월에 어떤 분이 트랙백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렵다!
한약에 대한 편견

문제의 발단은 이 글이 아니었나 싶은데, 안 그래도 할 말이 많은 분야이니 오랜만에 얘기를 좀 해 보자.

내가 원래 철이 덜 들어서, 글을 좀 빈정거리면서 쓰는 버릇이 있다. 최대한 자제하면서 점잖게 써봐야겠다.

우선 중요한 점부터 대략 짚고 넘어가자. 이 분의 주장의 핵심은 (그리고 많은 한의사 및 그 동조자들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고 보여진다.

1. 한의학의 의술은 효과가 있다.
2. 내가 효과를 보았다, 혹은 내 환자들이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3. 또한 효과가 없으면 수백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겠는가?
4. 그러나 "서양"의학적 방법으로 검증을 한다는 것은 당치않다.
5. 당신들은 이해를 못한다.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이해의 틀이 다르다.

하나하나 자세히 생각을 해 보자.

1. 한의학의 의술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의술의 일부 (작은 부분이든 큰 부분이든)가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약초에서 생체활성을 가지는 물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 축에도 속하지 못하는 당연한 얘기다. 침술에 대해서는 좀 더 회의적이다. 아마 플라시보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되고, 어떤 주장에 따르면 신경을 자극 혹은 마비시키는 게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도 있지만, 경락이니 하는 이론들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연금술이나 4원소설 정도의 근거 밖에는 없는 이론들이다. 최소한 산업화된 복지국가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그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일이라면, 좀 더 확실하고 객관적으로 검증된 의술을 써야 한다고 본다. 한약이 효과가 있다면, 그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제대로 된 임상실험을 해서 확실한 근거를 내 놓으면 환자에게도, 한의사에게도 서로 좋은 일 아닐까?

2. 그러나 이 "검증"이라는 것은 신앙간증 식의 "제가 효과를 보았어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이비와 진짜배기를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신앙간증 식의 일회성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대느냐, 객관적이고 통제된 실험 결과를 근거로 대느냐이다. 내가 기도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게 하나님이 실재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 수백명이 교회를 가득 메워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님이 "우리 교회 신도 중 성령을 체험한 분이 수백명입니다"라고 해봤자,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의 산만한 집합은 아무 근거도 설득력도 가지지 못한다. 물론 이 비유는, 모든 비유가 그렇듯이 불완전하고, 따라서 외삽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수를 써도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 혹은 반증할 수는 없지만, 한의학의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증명이나 반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을 맞고 삔 다리가 나았어요", "한두번이 아니에요", "우리 삼촌은 한약 먹고 간암도 나았어요", "제가 고친 아토피 환자만 백명이 넘어요"는, 그 일화들이 모두 사실일지라도, 객관적인 근거가 아니다. 객관적인 근거란, 가령 "발목을 삔 환자 자원자 100명을 50명씩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침구학 이론에 따라 어디어디에 침을 놓고, 다른 그룹은 그냥 발목 근처 아무데나 (일정한 자리에) 놓되, 환자들에게는 알려주지 말고, 그 경과를 일정시간마다 조사, 기록하고 통계를 내어 두 그룹을 비교해 보니 침구학 이론대로 침을 맞은 환자들이 부기가 30% 빨리 빠지고 통증도 25% 덜 느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 국립의료원 소속의 대체의학 연구소 내에서 행해진 이런 실험의 결과는, "통증 완화에는 효과가 있으나 어디 놓느냐는 상관없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 번의 임상실험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안되지만, 지금까지 행해진 적지 않는 수의 실험에서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은 지적해야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침술은 효과가 없다", "한의학은 효과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장은 "한의학의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 객관적인 검증이 미흡한 상태다"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을 상대로 사용하려면, 아무리 효과가 높아도 객관적인 검증을 받고 사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다" 하는 것이다.

내가 위장병이 있어서 오메프라졸 omeprazole을 복용하고 있다고 치자. 내 증상이 그것을 먹어서 나을 증상인지, 나을 증상이라면 나을 확률은 얼마고 낫지 못할 확률은 얼마인지, 부작용으로 두통, 복통, 변비, 설사가 생길 확률은 약을 안 먹었을 때와 비교해서 얼마가 되는지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먹을 수 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게 더 좋은 길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양"의학의 치료가, 특히 한국에서, 반드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반은 확실히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한의학 역시, 이런 식의 정량적인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에 대해서는 마지막 부분에 더 논의가 될 것이다.

3. 아쉽게도, 잘 정의된 방법론으로 무장되지 않은 개인들의 산만한 집단이 벌이는 행동은, 아무리 그 수가 많고 아무리 그 역사가 깊어도 그 수와 역사가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점성술은 최소한 인간이 기록이란 것을 시작한 이후부터 계속,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그 소비자의 층도 매우 두텁지만, 그것이 점성술을 정당화 하느냐 하면 절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인간과 그 행동양태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떤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 하는 것은 많은 경우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4.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혹은 서양과학과 동양철학이 따로 있지 않다. 의학이 있을 뿐이고, 과학이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그것들의 발전이 서양에서 먼저 일어났지만, 그것은 의학과 과학의 객관성과 일반성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동양철학에서 시작된 의학이니까 서양 의학의 잣대를 대면 안된다는 것은 민족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오류이다. 한의든 "양"의든, 결국 다루는 시스템은 한 가지, 인간의 몸이다. 물리적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과학적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능력부족이거나, 게으름이거나, 아니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5.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한의학을 가르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시스템은 다르지 않다. 시스템은 사람의 몸이다. 내 몸이 병원에 가면 서양 시스템이었다가 한의사한테 가면 동양 시스템으로 바뀌는 양자역학적 미시의 세계에서나 벌어질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해의 틀이 달라도, 대상이 같다면 이해의 틀과 무관하게 검증이 가능하다. 일전에 어떤 한의대생은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써야 되는 처방이 다른데 어떻게 서양의학식으로 검증이 가능한가"라고 반문을 했었는데, 한의대 6년과 얼마간의 수련을 거쳐 습득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립된 "체계"가 있다는 것이고, 물리적인 세계를 다루면서 정립된 체계가 있는 대상이라면 당연히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다. 그 대우로서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립된 체계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한의학을 (천재에게 불립문자 심심상인으로 가르치는 것 빼고) 가르친다는 것도 불가능하단 말이다. 자, 도대체 어느 쪽인가?

쉽게 말해, 얼마 전에 양의와 한의가 감기 치료로 싸움이 붙은 걸로 아는데, 뭐 무슨 체질에 따라 어떻게 하든 간에 한의가 한 그룹을 치료하고, "가짜 한의"가 또 한 그룹을 치료하고, 양의가 또 한 그룹, "가짜 양의"가 또 한 그룹,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아무 치료도 안하고 두고 본다면, 열이 내린 것은 각각 몇 퍼센트, 기침이 멎은 것은 각각 몇 퍼센트, 코막히는 것, 몸살 나는 것 등등 모두 정량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그 이해의 틀이고 시스템이고 상관없이, 결과로 얘기가 끝난다는 말이다. (물론,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환자를 몇 년 혹은 그 이상씩 따라가는 연구가 필요하다만,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당장의 효과라도 확실히 알고 가자 이거다)

정보와 선택을 의료소비자에게 - 거부할 이유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한의학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효과가 있다면 알고나 쓰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한의학은 사기라 했다고 흥분하는 분들이 있나본데, 스스로는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음에 따라 양심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계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확신에 차서 행동하는 그 치료행위 자체가, 결과론적으로 한발짝 떨어져 보면 소비자 입장에선 사기당하는 것이 될 수 있단 얘기다.

물론 이 글이 한의사 혹은 한의학 신봉자를 "개종"할 수 있으리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팬으로서 내가 섬기고 있는 모기불님의, "한의학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음"이라는 태도가, 훨씬 더 현명한 태도라는 것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행동은 절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여기서도 증명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 어쩌면 한의학은, 어떤 의미에선, "담배"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워낙 뿌리가 깊어서 놔두고 볼 수 밖에 없는. (다시 한 번, 비유는 비유일 뿐, 외삽하지 말자)

by 맨땅에헤딩 | 2005/03/16 12:40 | 트랙백(2)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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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모기불통신 at 2005/03/18 08:22

제목 : 암세포를 이기는 발효음식?
MBC 3부작 다큐멘터리 '곰팡이' - 암세포를 이기는 '발효 음식'의 비밀 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대단히 재미있을 것같은 다큐멘터리.... 이다마는, 기사에 나온 내용을 읽고 있자니 한숨이 폭~~~ 뭐 다큐멘터리를 실제로 보지도 않고서 뭐라고 비평하긴 곤란하다마는 대략 그림이 그려지는데 제발 내 짐작이 틀렸기만 바랄 뿐이다. 간단히 기사를 정리하고 생각해볼 점을 짚어보도록 한다....more

Tracked from decadence in.. at 2005/03/19 01:47

제목 : 지식의 획득 수단으로서의 과학
원인과 결과를 따지고, 사태를 이리저리 분석하는 식의 태도를 "서양식 사고방식"이라고들 하던데, 정말로 그런 사고방식으로서의 과학은 사실 서양에서도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어땠을까? 별 거 없었다. 아니, 시작된 이후에도 서양 한 켠에서는 미신적 전통이 언제나 면면히, 아니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왔다. 신비로운 이야기 보따리 좋아하는 것은 인류의 특징인 듯. 남성적 서양 vs. 여성적 동양을 대조시켜 몇몇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제국주의 시대의 현실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손오공 여의봉식의 잣대를 오리엔......more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5/03/16 15:40
어린이날하고 비슷할 지도...
Commented by 맨땅에헤딩 at 2005/03/17 16:19
기불// 왜 어린이날하고 비슷하죠? 음...요즘 세상엔 없어도 되지만 없애면 시끄러우니까? ^^;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5/03/17 23:32
없애면 내수경기가 침체되니까.....
Commented at 2005/03/18 00: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맨땅에헤딩 at 2005/03/18 02:01
비공개님//물론 괜찮지요. 그게 싫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텐데요 뭐.
Commented by intherye at 2005/03/18 16:38
알 필요 없다고, 믿으면 알게 될 거라고 해봤자, 우선 알아야 믿고 싶은 마음이 들까말까 한 사람들은 전부 도망간 다음이겠죠..
Commented by Karidasa at 2005/03/19 21:45
우연히 들렀다 '동의' 한 표 던지고 갑니다.
Commented by happyalo at 2005/03/23 21:51
음... 문제는 제 생각과 달리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논의가 불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요걸 늘꿈속님께 질문한 적도 있거든요. 자연과학이 아니냐 라는 것. 근데 아니다 쪽이시더군요.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리고 현재의 시스템 상으로 볼 때는 분명히 자연과학으로 분류되어 있고 한의학과 교수들 역시 그걸 재편할 용의가 없는 걸로 보면 자연과학이라고 봐야 할텐데...
그래서 전 아직 혼란스럽습니다. 철학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 건가 하고... 게다가 한의학이든 서양의학이든 의학 자체가 남의 범주인지라 3자가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정연한 글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맨땅에헤딩 at 2005/03/24 04:21
happyalo//한의학은 과학이 아니고 철학이라면 한의학의 의술은 임상에서 쓰여서는 안되겠죠. 제 글의 논지도 그것이고요. 임상에서 쓰려면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객관적인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제 짧은 견해로는, 아직까진 한의학은 유사과학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려 노력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죠.
intherye//의외로 진실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믿어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도망갈 사람들은 도망가 봤자, 장사가 여전히 잘 되나봅니다.
karidasa//감사합니다. 업데이트는 느리지만 가끔 들러주세요.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5/03/24 08:48
도망갈 사람은 다 도망가고 남은 사람 대상으로 장사를 해야 하니까 값은 점점 올라가고 이제 혈압도 재야 하고 CT 도 찍어야 하고....
Commented by 유후후 at 2015/07/29 21:56
국가적 실수로 제도권에 넣은 것 부터 문제죠. 애초에 어떤 얼빠진 사람이...
그냥 밖에 두면 원하는 사람만 가 볼 것이고, 큰 문제만 안 일으키게 관리하면 되고, 하다 안되면 치료사 정도로 자격증 주면 되는 걸.
서당 좋다는 사람이 검증도 없이 정규교육이랑 똑같이 제도에 집어넣은 꼴이죠.
지금은 한의사도 많아서 큰 문제에요. 다 같이 죽으려고는 안할 거 아니에요.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풀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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