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의혹



엠비씨 피디수첩에서 황우석 팀의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보도를 할 예정이라는데, 여전히 언론들은 흥분해서 헛다리만 짚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편이 흥분한 것에 대해서는 점잖은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일단 논문들에 나온 데이타가 다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줄기세포가 가짜일 확률은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데 그 데이타가 조작이 불가능한 것이냐 하면, 그건 물론 아니다. 모모 일보에선 "싸이언스쯤 되는 일급 저널이 검증없이 실어줬겠느냐"고 했지만, 에디터와 리뷰어들은 논문 원고만 가지고 판단할 뿐, 실제 줄기세포를 내놓으라고 해서 실험으로 검증하는 게 아니다.

정황상 조작이 아닐 것 같고, 피디수첩의 대형 삽질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그 정도야 사실은 조작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는 뭐 그 정도 얘기. 몇 년 전에 벨 연구소 (루슨트 테크놀러지 연구소) 소속의 촉망받는 독일출신 물리학자가 데이타 조작으로 경력을 망친 일도 있고 보면, 탑클래스의 과학자에게도 조작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황당한 음모론으로는, 대학원생 몇 명이 공모하여 황우석 이하 많은 교수들을 속이고 가짜 데이타를 보고했다는 뭐 그런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겠다. 어차피 교수들이 피펫 들고 후드 안에서 일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몇가지 생각들.

황우석 교수의 논문들은 큰 "과학적"인 가치를 가지는 건 아니다. 새롭게 밝혀낸 사실이 있는 논문들이 아니라는 것. 과학계와 사회일반에 끼치는 임팩트가 컸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내용 자체로 따지자면 기술적인 개선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창의적" 연구가 기술적 혁신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 황우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이지, 아직은 "세계적인 과학자"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두가지를 일도양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천재적인 언론플레이 덕인 듯. 그의 업적은 근면성실 + 운 + 풍부한 난자 + (황우석에 의하면) 한국인의 손재주 + (이공계 대학원생의 인식으로는) 연구원 착취가 함께 빚어낸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같은 맥락에서, 황우석은 "줄기세포계의 세계 제일"도 아니다. 그의 논문들이 보고한 것은 체세포 핵치환을 통한 복제 기술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가 소위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에 가져올 파급효과 때문에 그가 줄기세포계의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어낸 연구는 이미 7년 전에 보고가 되었고, 포유류를 체세포 핵치환으로 복제한 것 역시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의 연구는 이미 알려진 원리를 기술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종에 적용시킨 것들이다.

줄기세포가 난치병 환자를 고치는 데 쓰이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피디수첩은 난치병 환자의 희망을 짓밟지 마라"는 항의는 좀 성급하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치료에 쓰이게 될 때 까지는 20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콜러와 밀스타인이 단일클론 항체 기술을 개발한 것이 70년대 중반이고, 학계는 곧바로 이 연구의 의료적 응용가능성에 주목했지만, 실제로 치료용 항체가 허가되어 쓰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하고도 후반이 되어서이다. 줄기세포같은 전인미답의 영역이라면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연구가 가속화되는 것을 고려해도, 당장 김송씨가 난자를 기증하면 강원래씨가 벌떡 일어나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황우석이 세계 유일의 줄기세포 연구자이고 그가 없으면 연구가 10년을 퇴보하게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황우석의 거짓말은 상당히 심각한 사안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문제 없이 어물쩍 넘어가게 되는 모양이다. 데이타 조작을 하지 않았더라도, 논문에 (비록 한 문단이지만) 거짓말을 적어놓은 것은 과학자로서는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싸이언스지에서 문제삼지 않아준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은 사회적, 과학적, 실용적 임팩트만으로도 굉장한 가치가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연구가 쉽게 나오는 건 아니다. 의혹을 해소하고 잘잘못을 평가받는 것과는 별개로, 그 연구로 "국익"이 창출될 수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이번 사태에서 민족주의적 광기도, 종교적 독선도, 생명윤리적 기만도 다 빠져나갔을 때, 우리 사회가 뭔가 교훈을 얻게 된다면, 그 사이의 소란과 갈등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by 맨땅에헤딩 | 2005/11/29 15:24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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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황우석 교수의 업적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별 게 아니었다면, 요새 불고 있는 광풍은 없었다. 논쟁의 뜨거움은 참여자들이 인식하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의 중요성에 의존한다. 따라서 연구의 실체와 함의를 살펴......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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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ntherye at 2005/11/29 16:29
늘 느끼는 것이지만, 원츄입니다. 입이 다 헤- 벌어지네용.
Commented by 덧말제이 at 2005/11/30 21:16
그의 언론플레이를 보고도 못 보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뻔히 보이는데...

어차피 교수들이 피펫 들고 후드 안에서 일하는 건 아니니까. <- 근데 신문기사엔 그가 없어서 요새 연구를 못 하고 있다고 계속 나오고 있지요. 제 선배 왈, 그 동안 그의 출장 중엔 그 밑의 연구원들 연구 안 하고 놀았다는 얘기인가 봐~ ^^;
Commented by 맨땅에헤딩 at 2005/12/01 16:19
intherye//과찬의 말씀을...^^
덧말제이//다 알아보는 언론플레이는 고수가 할 바가 아니죠. 언론플레이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가령 민노당 의원들의 자료요구를 빠져나가는 언론플레이 ("민노당때문에 연구 못하겠어요" 징징징) 같으면, 사실이 알려진 지금 시점에서 보면 좀 가증스럽죠.
Commented by 진실은이긴다 at 2008/01/01 23:41
영장류 복제 불가라고 떠들던 새튼이 복제기술에 특허를 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황우석의 업적을 '과학적'이지도 않고 별 볼일도 아닌 기술이라고 표현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 세계의 생명공학은 황우석이 열어 놓은 문으로 쇄도해 들어가고 있는 거다. 새튼이 불가능하다던 그 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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