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7일
한의학은 과학이어야 하나.
한의학 단상.
과학의 특성 중 중요한 것들이 객관성과 재현가능성이다. 누가 봐도 (기본을 갖추고 있다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으며 누가 해봐도 제대로 시키는 대로 한다면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성과 재현가능성이 "선"인가? 물론 아니다. 아예 차원이 다른 개념이며 선악, 옳고 그름의 개념으로 나눌 문제가 전혀 아니다. 가령 문학이나 예술에 재현가능성 따위가 무슨 상관인지는 상상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문학이나 예술이 "악"이라던가 틀렸다고 얘기할 수 있을 턱은 물론 없다.
그런데 과학이어야만 하는 분야도 존재하는데, 가령 의학이 그렇다. 사람의 몸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특히 통계적 의미에서의) 객관성과 재현가능성이 필수적이다. 그때그때 달라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거고, 병원에 갔을 때는 피가 흐르던 팔뚝에 한의원에 갔더니 기가 흐르더라 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다방구하는 소리는 판타지 소설에선 훌륭한 창의력일지 몰라도 복지국가의 의료시스템에선 절대 성립해선 안되는 얘기다.
그래서 한의학은 한의학으로 존재하는 한, 절대 과학이 될 수 없다. 한의학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과학적이 될 수 없다는 얘기이며,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치료법이 과학적인 검증을 통과하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한의학의 바운더리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쉽게 얘기해서 과학화된 한의학은 그냥 의학(의 일부)일 뿐이고, 이를 통해 (한의학이라는 신기한 한국적 현상이 생계수단인 일부를 제외한) 사람들은 이익을 누릴 뿐 그 어떤 손해도 입지 않는다. 검증되고 객관화된 치료법이 그렇지 않은 치료법에 비해서 좋지 않다는 주장은 그 누구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의학에 맞서 싸우는 자랑스러운 "한"의학을 잃어버리게 될 배달민족의 상실감은 논외로 한다면.)
즉 한의학적 지식 자체는, 점성학이나 연금술의 지식을 토대로 천문학과 화학이 발전했듯이, 이용할 수 있지만, 한의학의 시스템은 과학사적 의미가 있을 뿐 여기서 과학적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빗나간 헛된 시도라는 점이라는 문제의식이, 한의학에 대한 논리적, 비판적 접근의 단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 by | 2008/01/17 22:50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