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30일
연평해전 vs 강릉 무장공비
연평해전에 대해서는 참으로 기억해내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죠. 예, 당연히 기억해야 하고 유족들에 대해선 국가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져야죠 (제가 듣기론 전정권, 전전정권에서도 연평해전 전사자 및 유가족에 대해서 규정 이상의 예우가 있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citation needed]). 근데 그것에 대해 자꾸 탁월한 기억력을 과시하시는 분들의 비결은 애국심이나 반공정신인 것 같지는 않아요. 뭐랄까, 음...
권력욕? 당파성?
96년에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들, 기억하시나요? 공비에 의해, 또는 오인사격에 의해 10명의 군인 및 민간인이 사망하셨더군요.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는 (당시 집권당의 후신인) 한나라당도, (연평해전 얘기만 나오면 더욱더 애국적이 되는) 조중동도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더라구요. 지금 이 사건 희생자 추모행사가 정부차원에서 열리고 있나요? (이 부분은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나서서 "그동안 정부가 할 일을 못했다"고 반성한 적이 있나요? "사건"이 아니라 "산악전" 혹은 "소탕전"이라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주시는 애국보수단체들은 안계신가요?
재미있는 기록이 있더군요.
http://blog.daum.net/schultz/12269246?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schultz%2F12269246사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 것은 수도통합병원에 있을 때부터였다. 용대리 교전 이틀 후인 1996년 11월7일, 수도통합병원에서 오영안 대령 등 전사자 3인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거행됐다. 그런데 행사 직전에 원주병원에서 막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던 부상자 3명을 통합병원으로 급히 이송했다. 영결식에 참석할 고위 인사들이 부상자들을 한 장소에서 ‘위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부상자 중 한 명은 영결식이 끝난 후 다시 원주병원으로 데려갔다.
국방부 장관이 병원을 찾았을 때는 국방부 관계자가 부상자들에게 “러시아 방문을 마치자마자 이곳부터 찾아주신 장관님께 박수를 보내드리자”고 했다. “피흘려 싸운 장병들의 쾌유를 빌며 박수를 보내자”는 사람은 없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훈장도 받지 못했다. 무장공비 소탕작전과 관련, 40여 명이 훈장을 받고, 20여 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소령은 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그는 “훈장 수여를 위한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못 받고, 작전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엉뚱한 사람들이 훈장을 받기도 했다”고 말한다. 부상자들이 이에 대해 항의하자 당국은 “재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용대리 교전 현장에는 장병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이곳에선 가끔씩 군이 주관하는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소령은 처음 한동안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이내 발길을 끊었다. ‘들러리’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념비에 부상자들의 이름은 없다. 이소령은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고 싶었지만 아무 흔적도 없으니 머쓱할 것만 같아 생각을 바꿨다.
군 당국은 행사에 참석한 부상자들이 헌화할 때 낄 장갑 하나 준비하지 않아 남이 끼고 있는 장갑을 허둥지둥 빌려 껴야 했다. 통합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어렵사리 현장까지 찾아갔지만, 군은 팔을 꼼짝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앰뷸런스 한 대 보내주지 않았다.
# by | 2008/06/30 23:59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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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묻고 싶습니다. 연평해전에 참가한 사람들만 위국헌신한건 아니라는 거죠(그렇다고 제가 이분들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문제라는 거죠. 1968년 울진이나, 잘 모르겠지만(::) 청와대 습결사건 등등 거기서 소리없이 사라져간 사람들도 챙겨야 한다는 거죠. 군대도 안 간 인간들이 무슨 군인들으 마음을 알리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