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phobia

천연색소는 인공색소보다 더 안전한가?

모기불님의 글에서 든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천연"을 좋아한다. 요즘은 그런 표현을 안 쓰지만, 예전엔 벤허나 뭐 그런 영화 선전에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라는 문구가 꼭 붙곤 했다.

천연 그대로의 상태가 더 좋다는 것이 많은 경우에 참이라는 것에는 반대하기 힘들다. 탁 트인 초원이 콘크리트 바닥보다 더 보기 좋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계곡이 구정물이 흐르는 강보다 더 좋다는 것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게살이 게맛살보다 맛있고, 증류주가 희석주보다...(이건 아닌가? -_-)

그런데, 이런 "천연이 인공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를 외삽하여 "천연은 항상 인공보다 우월하다"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제 씹었던 건강 사기꾼들을 한 번 더 씹어본다면 (말했듯이,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우러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무슨무슨 건강식품은 <천연 재료>만 사용하여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라는 식의 선전문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특별히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혹자의 표현을 빌면 "EQ가 낮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선전은 대개 먹혀들어가는 듯 하다. 왜?

천연은 우리 모두를 낳았고 우리 모두가 돌아갈 자연에서 나온 것이고, 그걸 섭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순리대로 물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이고, 이런 말들은 듣기가 좋고 어쩐지 아침에 도를 들은 것 같고 그래서 저녁에 죽어도 좋을 것 같고, 어차피 죽어도 좋을 거라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천연 그대로의 건강식품으로 건강하게 죽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이건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어차피 별 생각이 없으니 말이 되든 안되든 상관도 없고,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_- 한마디로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이다.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게 사실임을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얘기고, 천연은 좋고 인공은 나쁘다는 단순한 등식에 크게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이 사고의 밑바닥에 과학혐오증이 있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주장이다.

과학혐오증의 한가지 이유는, 실제로 과학의 산물이 혐오할 만한 많은 것들을 만들어 냈다는 아주 타당하고 실질적인 이유이다. 핵무기와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와, 또 셀 수 없이 많은 악들이 과학적 지식 덕분에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이제 과학은 너무 복잡하고 정교해져서, 평생을 공부하는 데 바치지 않으면 그 세세한 내용을 이해하기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무지가 혐오를 낳는 것은 단지 이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혐오는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해도 될 것이다. 알지 못하니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고, 그 불확실성에서 불안과 공포가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아름다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우리 환경도 생활도 머릿속도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던, 푸른 초원엔 햇볕이 비추고 파랑새가 짹짹거리고 토끼가 깡총거리는, 그런 과거 말이다.

이런 몇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과학혐오증이 생겨나면, 그것은 급기야 <인공> <인조> <합성>을 나쁜 것, 싸구려, 가짜로 도매금으로 넘기게 된다. 반대로 <천연> <자연>은 좋은 것, 비싼 것, 진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전혀 진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것은 과학혐오증과는 큰 상관이 없는, 돈과 수요-공급이라는 좀 더 현실적인 원칙에 따르는 것이지만), 모기불님의 지적대로 과연 어떤 특정한 물건 혹은 과정에 대해 천연은 좋고 인공은 나쁘다고 단칼에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을 것이다. 게다가 어떤 물건이 천연 재료 혹은 소재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 물건의 우월성에 대해 그 어떤 보장도 해주지 못한다. 위에서 든 예에서 보듯, 천연 건강식품이라는 것과 부작용이 없다는 것 사이에는 전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복어독에는 부작용이 없나? -_- 복어독이 <인공> 독인가? 심지어 가장 열렬한 한의학의 옹호자라 할 지라도, 한의학의 <천연 약재>에 전혀 부작용이 없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논법은 좀 불공평하고 치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물음을 약간 바꿔보자. 천연물은 인공물<보다> 부작용이 덜한가? 품질이 좋은가? 효능이 좋은가?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예를 적지 않게, 어쩌면 그렇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예보다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학만능주의자가 아니다. 또한 심정적으로는 개발주의보다 환경주의에 약간 더 경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천연은 인공보다 본질적으로 더 우월하다>라는 명제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한 천연이 인공보다 더 우월해야만 환경주의가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그것은 우월해야만 채택될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한 얼굴일 뿐이다 (이 문장이 다윈주의 자체에 대한 반대로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모름지기 환경주의자, 반-개발주의자라면 "우월하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본다. 천연은 천연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우월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결론은 무엇인가?

1. 과학지식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해야 할 도구이다. 인공물을 혐오해서는 60억 세계인구를 지탱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 천연이 우월성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천연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가치는 우월성과는 상관 없는 곳에 있다.
3. 증류식 소주가 희석식 소
3.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ㅈ
3. 꼭 멋있는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말자.

by 맨땅에헤딩 | 2004/10/19 15:21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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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냉소와 조롱 at 2005/03/26 07:58

제목 : 양심적 진실거부자
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믿는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도, 그러한 의견이 양심에 의해 표출되는 것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그 의견을 씹는 것 역시, 내 양심의 목소리에 따른 것이니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아주머니 역시 자기 의견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정말로 정당하고 당연하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고, 그럴 것 같다. 소위 양심적 진실거부자이다. 기사 보기 - 현대 들어 의술이 발달하고 많은 질병이 극복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이전 시대보다 더 건강해졌......more

Commented by 홍명보 at 2004/10/20 10:26
맞아요.
천연은 그 자체가 가치이지 우월해서가 아니다.
결론이 명료하네요.
저로 하여금 공부하게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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